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

    충남 보령군 미산면 성주리 성주사지 안에 있는 탑비로서 국보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본 비석은 신라헌덕왕 때 당나라에서 수학하고 돌아온 낭혜화상을 위해 세운 비석으로서 신라시대의 비로는 최고의 걸작이며 아름다운 조각으로도 신라 최대의 비석으로 손꼽히고 있다. 귀부가 몹시 파손된 채 흙에 묻혔던 것을 1974년에 정부에서 복원하였고 그 후 비각도 새로 세웠다. 
    비문에 의하면 낭혜화상은 신라 무열왕의 8세손이며 법명은 무량이고 일찍이 당나라에 들어가 20여 년 동안 체류하였고 신라 문성왕 7년에 귀국하여 성주사에 있다가 진성여왕 2년에 입적하니 부보를 들은 왕은 낭혜라 시호를 내리고 탑명을 백월보광이라 하였다. 비문에는 명기되지 않았으나 건비년대는 진성여왕 4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비문의 글을 고운선생이 지으시고 그 종제이신 휘인설께서 쓰신 이 탑비는 전설에 의하면 거북좌대 일부가 파손된 것은 임진왜란 때 왜적이 우리나라를 침범하려고 군량미를 배에 싣고 대천 앞바다에 상륙하였던바 하룻밤을 지내고 나니 배에 실렸던 군량미(쌀)가 간 곳이 없어 왜적이 황급히 찾아보니 조금씩 떨어진 을 따라 가니 지금의 성주사 백월보광탑비 앞 이었다 한다. 그런데 갑자기 쌀이 떨어진 흔적이 보이지 않아 왜적이 노하여 비를 치려고 하니 비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여 칼을 휘두룬 것이 거북좌대 한 부분을 치니 마침 그 곳에서 쌀이 나왔다 한다. 그리하여 왜적들이 노해서 성주사를 불 지르고 행패를 부렸다고 하며 아직도 복원되지 못하고 있는 그 유명한 성주사지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