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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고운문집 출판기념회 덧글 0 | 조회 1,042 | 2017-08-07 00:00:00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고운 최치원 선생 문집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축사를 한 후 (사)고운국제교류사업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습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은 신라의 대학자이자 당나라에서 이름을 떨친 명문장가로 귀국 직후 당에서 쓴 글을 모아 헌강왕에게 바쳤던 ‘계원필경(桂苑筆耕)’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개인 문집으로 꼽힙니다. 얼마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중 정상회담에서 최치원의 시 ‘범해(泛海)’ 일부를 소개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을 정도로 중국에서 최치원에 대한 평가는 대단히 높습니다. 경주 최씨(慶州 崔氏) 후손들은 해마다 선생의 뜻을 기리는 행사를 열어오고 있습니다.  

 

새벽 6시에 서초3동 사전투표소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를 마친 스님은 서울 정토회관에서 발우공양을 한 후 최치원 선생 문집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 종로구 천도교 수운회관 대교당으로 향했습니다. 

 


▲ 수운회관 대교당

 

스님이 수운회관에 도착하자 (사)고운국제교류사업회 최병주 이사장님이 가장 먼저 나와 환영을 해주며 ‘현묘지도’라고 적힌 노란색 띠를 목에 걸어주었습니다. 스님도 밝게 웃으며 환대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 (사)고운국제교류사업회 최병주 이사장

 

2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행사가 시작되자 주요 내빈들의 축사가 이어졌습니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 이수성 전 국무총리, 이어령 전 문화체육부 장관의 축사가 있은 후 마지막 순서로 법륜 스님의 축사가 이어졌습니다. 

 


 

사실은 주최측으로부터 축사 요청을 받았을 때 스님은 ‘제가 설 수 없는 자리’라며 여러 차례 사양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스님도 최치원 선생의 후손이다 보니 계속 사양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나오게 된 것입니다. 앞서 어르신들의 좋은 축하말씀이 있었기에 스님은 간단 명료하게 고운 최치원 선생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님의 문집 발간과 학술대회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 날 우리가 ‘세계화’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신라 당시로 본다면 당나라 문화가 바로 세계화된 문화였습니다. 당시 당나라 문화는 중국적 전통을 기본으로 선진적인 인도문명과 서역문명을 받아들인 세계문명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치원 선생님께서는 당나라로 유학을 가셨고, 바로 그곳에서 이름을 떨치셨지요. 최치원 선생님만 그랬던 게 아니라 신라의 많은 학자들이 당나라에 가서 빈공과(賓貢科, 중국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시행한 과거)에 급제를 했습니다. 이렇게 최치원 선생님을 포함한 신라의 많은 학자들이 당시 세계 문화의 중심인 당나라에서 세계적인 학자로 이름을 빛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지금도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최치원 선생님의 이름이 빛날 수 있는 이유는 최치원 선생님의 창조성 때문입니다. 창조성의 조건은 첫째, 자기중심성, 둘째, 대외문화에 대한 개방적 태도, 즉 배움, 셋째, 그 둘의 융합입니다. 그래야 창조성이 나올 수 있습니다. 당시 유학파의 대부분 사람들은 배움은 있었지만 자기중심성이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지 않습니까. 한국의 학자들 중에는 각 분야에서는 세계적 수준의 석학이 많습니다만 앞선 문명을 배우는 데만 급급하거나 혹은 그 수준에 근접했다고 하더라도 서양문명을 뛰어넘지는 못했는데 저는 그 이유가 바로 자기중심성의 결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치원 선생님 이전에 신라로부터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쳤던 분으로는 원효 대사가 있습니다. 원효 대사는 중국에 유학을 가지도 않은, 시쳇말로 국내파임에도, 자기중심성을 가지고 중국 문명을 수용해서 새로운 이론을 창조해냈습니다. 당시 중국불교는 갖가지 종파로 발전했는데, 그것이 신라에도 물밀듯이 밀려들어와서 신라불교에 온갖 종파가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원효대사는 ‘그 종파의 갖가지 요점을 뽑아서 보니 결국은 모두 깨달음, 즉 부처가 되는 한 가지 길만 가리키고 있으니 열 가지 문호를 열어서 서로 쟁을 하지만 근본을 바라보면 쟁을 할 이유가 없다’며 화쟁사상(和諍思想)을 세상에 내놓으셨던 것입니다. 화쟁사상은 바로 중도적 관점에서 서로 다른 것들을 융합해낸 것으로써, 원효의 글이 한국을 넘어서서 중국에까지도 널리 읽히며 존경을 받게 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은 지난 100년간, 짧게는 50년간 서양 문물을 열심히 따라 배워서 서양의 수준에 근접한 지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럼에도 지금 한국은 모든 면에서 정체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모방, 즉 ‘따라 배우기’에만 급급해서 자기중심성을 놓쳐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최치원 선생님의 발자취를 다시 살펴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동양적 전통 및 국학이라는 자기중심성을 갖고 서양의 앞선 문물을 융합해서 서양이 갖는 한계를 뛰어넘어야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앞두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세계문명을 선도할 것인가, 아니면 따라만 가다가 정체될 것인가의 분기점에 서있는 것입니다. 

 


 

최치원 선생님께는 ‘당시 중국 전통의 유(儒)와 인도에서 온 불(佛)과 중국 전통의 도(道, 또는 仙)를 어떻게 융합할 것인가’가 과제였고, 결국 그것을 뛰어넘어 환웅과 단군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발전된 우리의 전통문화의 입장에 서서 유불선을 융합하여 ‘현묘지도(玄妙之道)’라는 새로운 길을 여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학문분야는 첫 번째가 자연과학, 두 번째가 사회과학, 세 번째가 철학, 네 번째가 종교입니다. 그런데 이 네 개의 학문분야가 각자 따로 놀 것이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하나로 융합해낼 것인가, 특히 동양적 전통, 한국적 전통을 바탕으로 우리가 이 네 개의 학문분야를 어떻게 하나로 융합해 것인가에 주목한다면 포퓰리즘에 빠진 서양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도 있고, 지금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도 융합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갈등’을 쉽게 ‘분열’이라고 보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원래 세상이란 다양한데 이 다양한 것들을 자기 식으로만 통일하려고 하니까 분열과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융합한다면, 이것은 ‘다양성의 조화’로 승화되어 오히려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최치원 선생님의 문집 발간과 학술대회를 개최하면서 선생님의 뜻을 되새겨본다면, 정체되어가는 한국이 그 정체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한국이 대중예술분야에서 ‘한류’라는 성공가도를 달리는 이유가 바로 서양 것을 배우되 우리 것을 중심에 두고 그 둘을 융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전통의 무거운 짐도 벗어던지고, 서양을 모방하는 데만 급급했던 것에서도 벗어나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힘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런 힘이 대중예술분야를 넘어서서 철학, 종교, 정치, 과학 분야까지 점차 확대된다면, 우리 민족에게는 새로운 서광이 비칠 것이라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최치원 선생이 가졌던 창조성을 오늘날 한국 상황에 견주어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 새롭게 해석해낸 것에 대해 참석자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 법륜 스님의 축사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이홍구(전 총리), 이수성(전 총리), 이어령(전 장관)

 

오후에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를 하기로 예정된 학자들도 스님의 관점에 매우 신선해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자기중심성을 토대로 한 개방적 태도’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이어서 최치원 문집 출판을 기념하는 축하 케익 컷팅식이 있었습니다. 참석한 내빈들이 모두 앞으로 나와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했습니다. 

 


▲ 케익 컷팅식

 

마지막으로 감사패 증정이 있었습니다. (사)고운국제교류사업회 최병주 이사장이 축사를 한 내빈들을 비롯해 한 분 한 분에게 감사패를 건네자 청중석에서는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 감사패 수여식

 

이렇게 1부 프로그램을 마친 후 참석한 내빈들은 점심 식사를 하러 함께 이동했습니다. 오후 1시 30분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학자들의 주제 발표와 종합토론 등 국제학술대회가 2부 프로그램으로 열렸습니다. 스님은 2부 프로그램에는 참석하지 않고 어르신들, 내빈들에게 인사를 한 후 평화재단으로 돌아왔습니다. 

 

평화재단에서는 오후 2시부터 연이어 회의와 미팅이 계속 있었습니다. 내일은 아침 8시 비행기로 중국으로 출국해 4박 5일 간의 일정으로 조양시, 적봉시 일대의 요하 문명 유적지를 답사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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